열린협상연구소 '영화 속 협상'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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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협상] #006. 보이지 않는 것의 힘. (아부의 왕, 2012)

관리자
2016-11-17
조회수 6136


“감독님, 저 그냥 이 영화 안 할게요.”

어느 영화감독에게 문제가 생겼다. 촬영 이삼일을 앞두고 주연 배우가 영화 출연을 안 하겠다고 나왔다.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분량이 대폭 줄었다는 게 이유였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많이 상한 듯했다. 감독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단독으로 시나리오를 바꿀 수는 없는 처지다. 배우 한 명을 위해 내부 갈등을 일으키는 건 더더욱 안 좋은 선택이다. 다른 배우를 섭외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감독은 고민 끝에 협상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전문가는 주연 배우가 출연을 거부한 게 단순히 분량 때문이 아니라 명배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전략을 세워 셋이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은 저희가 포기하겠습니다. 대신에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대한민국에서 단 한 컷에 ‘이야! 이 사람 진짜 명배우다’라고 증명될 수

있는 사람이 그쪽 말고 또 있습니까?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십시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전문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배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잠시 후 배우의 마음은 풀렸고, 엔딩 부분을 조금 수정하는 것으로 합의해서 영화를 계속 찍기로 했다. 특이한 점은 전문가에 대한 배우의 평가였다. 불과 몇 마디 대화밖에 나누지 않은 사람을 두고 배우는 이렇게 평가했다.

“저분 누구시죠? 사람 참 좋으시네요.”

사례는 영화 〈아부의 왕〉 속 한 장면이다. 비록 시나리오상의 내용이지만 협상 측면에서 곱씹어 볼 점이 많다.

거절하는 상대를 설득하려면 그의 말이 아니라 속마음, 즉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협상과 관련해 사람의 욕구는 두 가지로나눌 수 있다.

하나는 3강에서 설명한 인터레스트(Interest)다. 이는 요구 사항에 대한 이유이다. 출연 거절’이 요구라면 ‘출연 분량 증가’가 인터레스트에 해당한다. 출연 거절에 ‘왜?’라는 의문을 품으면 ‘분량이 줄어서’라는 이유가 나온다. 상대의 인터레스트를 해결해 줄 방법을 찾는 게 협상의 첫 번째 해법이다.

다른 하나는 숨겨진 욕구로, 이른바 히든 인터레스트(Hidden Interest)다.

이는 인터레스트의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왜 분량을 늘리고 싶어 하는가? 이를테면 ‘명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 본연의 깊숙한 소망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평소엔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의 말에 ‘맞아, 나에게 이런 욕구가 있었지’라며 비로소 인식하는 욕구다. 영화 속 협상 전문가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주연 배우의 히든 인터레스트를 끄집어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귀하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상대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을 이해해야 한다. 협상에서 상대의 말이나 표현은 가짜인 경우가 많으므로 그도 모르는 진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도무지 답이 없을 땐 좀 더 멀리서 상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대치되는 쟁점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나 고민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게 바로 히든 인터레스트이며, 그것이 눈앞의 협상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히든 인터레스트를 해결해줄 방법을 찾는다면 협상은 예상외로 쉽게 풀린다. 더불어 상대는 여러분을 좋은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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